조선시대 손꼽히는 비운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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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22:04
돌잔치앤가반나
사도세자의 5남 은전군
사도세자와 후궁 빙애(경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빙애는 원래 사도세자의 할머니 인원왕후의 궁녀였는데 사도세자는 원래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눈치를 보느라 후궁으로 삼지는 못했는데,
인원왕후가 승하하자 사도세자는 바로 빙애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인원왕후의 상이 끝나지도 않은 차에 허락도 없이 궁녀를 빼돌려 후궁으로 삼자 영조는 대노하여 빙애를 궁에서 쫒아내려 했지만 사도세자가 영조를 속이고 궁에 숨겨주었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들켰는데 어찌어찌 궁에서 살게 허락은 받음)
비극은 은전군이 세 살이 되던 해 일어났다.
빙애는 사도세자의 총애를 많이 받았기에 그의 옷을 갈아입혀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옷을 갈아입던 중 사도세자가 발작을 일으켜 빙애를 때려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세살배기인 은전군을 연못에 던져 죽이려 들었다.
다행히 은전군이 죽기 전에 근처에 있던 정순왕후가 시종들을 시켜 물에서 건져내 주었다.
영조는 전에는 빙애를 그렇게 이뻐하더니 갑자기 왜 죽였느냐며 사도세자를 질책하고
은전군에게 가련한 자라는 뜻의 연재(憐哉)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그러나 은전군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은전군의 나이가 17세 되던 해, 정조를 죽이고 역모를 꾀하려는 시도가 발각되었다. (정유역변)
그리고 주모자들을 잡아 심문하자 그들은 정조를 죽인 다음 은전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비록 은전군은 역모에 참여하지 않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멋대로 추대된 거지만
왕실의 법도에 따라 그는 죽어야만 했다.
형 정조는 처음에는 은전군을 살리기 위해 두둔해 주었으나 대신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결국 사약을 내렸다.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죽을 뻔하고 커서는 형에게 죽은 왕자 은전군의 인생은 이렇게 비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